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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고성 대진등대…바다에 친 ‘불빛철조망’-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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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기행](4)강원 고성 대진등대…바다에 친 ‘불빛철조망’
입력: 2007년 01월 25일 09:46:08
새벽에 길을 나섰다. 정경화의 바이올린 연주를 들으면서 강원도로 간다. 새벽의 길은 한가했다. 뚝뚝 끊어지는 내 마음속의 현들. 바람이 불어와 내 마음의 현들이 소리를 낸다. 은빛 현들이 반짝이고 있다.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세상의 모든 것들은 보고 있는 이의 마음 모양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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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진등대는 우리나라에서 사람이 상주하는 등대 중 가장 북쪽에 있는 등대다. 대진등대에서 바라본 대진항 전경(사진 위).

인간의 빛나는 마음을 보고 싶다면 별을 보고, 변하지 않는 진실의 마음을 보고 싶다면 나무를 보라. 그리워 울고 싶은 마음을 보고 싶다면 구름을 보고, 강렬한 의지로 살고 있는 영웅을 보고 싶다면 태양을 보라. 자연은 인간의 마음을 드러내는 우주의 몸이다. 그리고 기도하고, 사랑하면서 생을 배우고 싶다면 등대를 보라.

대진등대는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대진리에 있다. 우리나라 최북단에 있는 유인등대이다. 1973년 1월20일 무인등대로서 항로표지 업무가 시작되었지만, 91년 유인등대로 새롭게 단장한다. 등탑의 모양은 백색으로 8각형의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되어있고, 높이는 31m이다. 등질은 섬백광 12초 1섬광이다.

대진등대는 두 가지 업무를 병행한다. 대진등대 관리와 더불어 동해안 북방어로한계선을 표시하고 있는 저진 도등과 거진 등대를 원격 제어시스템으로 운영한다. 그래서인지 다른 등대는 보통 3명의 등대원이 근무하는데, 대진 등대는 인원이 4명이다.

등대의 불빛은 360도 돌아가면서 위치를 표시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만 움직이지 않는 등대불빛이 있다. 바로 저진 도등이다. 이 도등은 일직선으로 빛이 나아갈 뿐 돌아가지도 주기적으로 번쩍거리지도 않는다. 저진 도등은 분단된 우리 국토의 북방어로 한계선을 표지하여 주는 것이다. 등대의 모양도 높은 곳과 낮은 곳에 각각 2개의 등롱이 있어 한 개의 등탑에 두 개의 불빛이 나와 철조망처럼 바다에 선을 그어 놓았다. 어부들은 그 불빛을 보고 조업을 하는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등대사무실에서는 한 눈에 저진 도등이 보인다. 날씨만 좋으면 북쪽도 관망이 가능한 곳이다. 등대원은 멀리 보이는 등탑을 가리키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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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보이는 것이 저진 도등입니다. 저곳은 군사지역이어서 군의 허가를 받은 다음에 들어갈 수 있지요, 민간인으로 자유롭게 올 수 있는 최북단은 여기까지입니다. 동해의 독도도 입도가 금지되어 있지요. 언제나 최변방은 금지되어 있어 외로운 것인가 봅니다.

저진의 불빛은 철조망입니다. 바다에 철조망을 칠 수 없기에 불빛으로 표시하는 것입니다. 조업 중인 배는 그 불빛이 나오는 것을 보고 남과 북을 가늠합니다. 왼쪽에서 불빛이 나오면 남쪽이지만 행여 오른쪽에서 나온다면 북방 한계선을 넘어간 것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월북한 겁니다.”

저진 도등은 민통선 내에 있기 때문에 군사적인 이유로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대진 등대는 민통선에 근접해 있다. 동해안의 최북단은 철조망이었다. 대진 등대의 초입에도 철조망이 바다를 가로막고 있었다. 바다나 육지나 모두 건너갈 수 없는 곳이었다. 북은 어쩌면 배가 다니지 않는 머나먼 섬인지도 모른다.

대진 등대는 외롭고 높다.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높은 등탑을 가지고 있고, 등롱 바로 아래에 사무실이 원형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등탑이 31m이므로 사무실은 약 30여m 상공에 있는 것이다. 사방의 유리창을 통하여 보니 마치 비행기를 타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내려다보니 등탑 옆에는 2000년에 신축된, 등대원들이 살고 있는 숙소가 있다. 직원들의 숙소가 동해바다의 풍광과 어울려 아름다운 휴양지의 별장처럼 보였다.

근처의 명소인 화진포에는 유명한 별장이 있다. 남과 북의 두 권력자의 자취가 남아있는 곳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별장과 김일성 전 주석의 별장. 두 권력자의 이름은 아직까지도 화해를 하지 못하는 분단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 두 사람의 이름이 점점 멀어지고 있다. 그러나 분단 상황에서 이들의 이름은 화인처럼 선명하다.

화진포는 경포대와 더불어 강원도의 아름다운 호수 중 하나이다. 풍광이 아름다운 곳에 권력자들은 별장을 지었다. 화진포에서 어느 여름 날, 사진 찍는 선배와 밤을 새운 적이 있다. 그때에는 대진 등대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마침 가을이어서 아름다운 단풍의 풍경에 저녁 노을, 온통 붉은 색의 기억이 아직 현상하지 않은 필름처럼 내 가슴에 감겨 있다. 그때 우리는 김일성이나 이승만이라는 이름 대신에 먼 동해바다의 오징어 조업 어선을 바라보았다. 그것을 관리하는 저진, 거진, 대진 등대의 불빛은 그때는 보지 못했다. 조업 어선의 지나치게 밝은 등잔이 바다에 떠올라 있었다.

고성 현내면의 명소는 통일전망대이다. 금강산의 구선봉과 해금강이 지척에 보이고 맑은 날에는 옥녀봉, 채하봉, 일출봉 등 금강산의 전경을 볼 수 있다. 통일전망대는 파주에도 있다. 서쪽의 전망대와 동쪽의 전망대는 서로 멀리서 바라보고 있겠지만, 전망대에 선 사람들은 오로지 북을 바라본다. 북은 언제까지 바라만 보아야 하는 땅이 될 것인가?

역시 고성군 현내면 명호리는 우리나라의 최북단 마을이다. 이곳에는 지척인 북에 가족을 두고 온 실향민이 많이 살고 있다. 종교시설도 통일을 위한 기복의 의지가 배어있다. 성모상, 미륵불상, 전진철탑은 분단 조국의 통일을 염원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군사시설을 가까이 하고 있는 마을답게 장갑차, 탱크, 비행기 등을 전시하면서 안보교육을 병행하는 곳이기도 하다.

거진 등대가 있는 거진에서는 8년 전부터 해마다 겨울축제가 벌어진다. 고성 ‘명태축제’는 동해바다 고기의 상징인 명태를 위한 축제이다. 명태는 눈이 밝다. 등대와 가장 어울리는 물고기는 아마도 명태이리라.

명태를 제사상에 올려놓고 ‘수성제’를 지내면서 나흘 동안의 명태축제는 시작된다. 어부들이 명태가 좀더 많이 잡히게 해달라고 제사를 지낸다. 바다와 인간과 그리고 명태의 연결고리가 튼튼하고 무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제사를 지낸 다음에 마른 명태를 대문 문설주 위에 걸어놓고 복을 빈다. 눈이 나쁜 사람들은 명태에게 밝은 눈을 달라고 빈다. 사람들은 명태를 잡고, 먹고, 그리고 신으로 섬긴다.

대진 등대원들은 분주하다. 가까이에는 아직 넘어갈 수 없는 분단의 바다에 불빛의 철조망을 쳐야 하고, 멀리서는 반갑게 다가오는 우리의 어선을 맞이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등대원들의 말투가 군인들처럼 딱딱하고 사무적이었다. 단단한 사내들의 속심을 보는 것 같은 말투이다. 그러나 멀리서 온 나그네에게 따뜻한 차를 내준다.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등대 관리를 위해 각종 컴퓨터 모니터 화면을 응시하고 있는 눈빛이 바빴다. 첨단장비를 관리해야 하고, 그 장비의 관리가 소홀해 만에 하나 우리의 어선들이 길을 잃는다면 이것은 남과 북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곳은 긴장된 조국의 한 단면으로서 위치하고 있었다. 높이 올라가서인지 빨리 내려오고 싶었다.

높은 등대사무실에서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해안선이 완만한 곡선을 그으면서 밀려오고 밀려가는 저 숨소리 같은 바다의 끝.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곳은 국경마을이었다. 저녁 어스름 등대를 떠나기 전, 등대의 불빛이 밝혀지는 것을 보았다. 오늘 밤에는 깊은 바다 속에서 물고기처럼 잠들고 싶었다. 아주 깊은 심해에서 납작해진 몸으로 바다바닥에 엎드리고 싶었다.

〈시인/원재훈〉
고성 통일명태축제